About the work and the process 

작업 전반의 분위기를 살펴보자면 대체로 일상에서의 어떠한 행위나 상황에서 시작하여 집중시키거나 발전시키곤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 에스컬레이터를 오르고 내리는 행위, 감자칩을 먹는 행위 등을 통하여 행위가 일어나는 주요 신체 부위를 집중하게끔 한다. 

이와 같은 일상의 일들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고 작업 내의 여러 장치를 통하여 다른 이미지를 상기시키거나 새로운 의미들을 도출해 낸다. 

행위하는 신체는 몸을 사용하는 작업에 대한 욕구로 인하여 작업 초기에 무작정 카메라로 행위를 녹화하며 등장된 바가 있다. 

무빙 이미지, 비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움직이는 기관차의 움직임에 무작정 흥미를 가지도 녹화를 한 비디오의 초기 작업처럼 어쩌면 나는 나의 신체에 관한 관심과 흥미를 무작정 카메라로 찍기 시작하며 발견하게 된 것이다. 카메라의 사각 틀 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흥미롭게 보여지는 부분적인 이미지들은 작업 내에서 점차 의미를 가지며 발전하게 된다. 

<절단과 크롭>

 크롭은 컴퓨터 상 이미지나 자료등을 의도적으로 자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의도적으로 신체의 일부를 관람자로 하여금 집중하게끔 신체의 일부 이미지를 크롭하여 영상이미지를 생산해 내었다. 발만을 촬영한 “움직임” 작업과 “인간스러움” 작업 시리즈, “빨강” 등이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이다. 이 작업들의 특징은 단순히 신체 일부의 이미지의 움직임을 잡아서 보여준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작업들이 단순한 “크롭된 이미지”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작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과도 연결되어있다.

“절단된 이미지”는 전체의 부분이라는 의미를 삭제한다. 크롭은 전체의 일부를 가져온다는 의미가 있는 반면 절단은 함께였던 부위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다른 것으로 존재하게 됨을 말한다. 

나의 작업에서 사용된 신체의 일부는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려는 크롭으로서의 의미가 있음과 동시에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작업으로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상기시키며 그 자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

 

“빨강” 작업에 등장하는 손의 다양한 근접 컷들을 예로 들어보자면 크롭된 이미지들의 나열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보여지기도 하며 부분으로 손과 팔 몸의 부분을 연상시키게 하는 작용을 한다. 동시에 실리콘으로 덮인 손과 빨간 고무장갑의 교차된 이미지들은 고무장갑이라는 특정한 오브제의 사용을 손과 연결시켜 고무장갑을 사용하는 손의 기능적인 의미를 상기시키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절단”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내가 작업에서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이 전체의 부분으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닌 나만의 고유한 이미지와 대상인 것으로 보여지고자 하는 욕구가 담기어 있다.

<몸>

작업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가장 큰 소재는 “몸”이다. 몸을 등장시키는 작업의 시작은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는데, 움직이는 신체와 움직일 수 있는 신체를 만드는 개념 성립의 과정이 작업의 주요 요소로 작용하였다.

“몸” 이라는 것 자체에 질문을 하게 되며 몸이 가진 여러가지 특성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초반에 집중해서 다루었던 특징은 몸이 가진 한계였다.

 

“Voice challenge” 에서는 그 예를 매우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여주게 되는데, 육성의 목소리로 고음의 노래를 연속으로 부르며 음이탈과 기준 음의 사운드를 반복하여 교차 편집하였다. 이 작업은  나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기계 듀엣” 은 행위하는 몸이 만들어내는 여러 레이어와 작용들이 영상과 사진, 사운드 등으로 다양한 결과물로서 흥미가 있는 작업이었다. 몸이 가진 한계에 질문하며 몸의 범주에 대해 탐색해 볼 수 있는 이 작업은 한계를 뛰어넘은 몸에서부터 출발한다.

“체화”가 이루어진 몸. 몸의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는 연주가의 몸은 신체 뿐만이 아닌 그가 연주하고있는 악기를 포함한다. 손가락을 들어 한음 한음 운지를 기억하며 되짚어 보며 소리를 듣고 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과정을 수많은 시간의 훈련으로 단 몇초로 줄여버리고 그 결과는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 소리로 나타나게 된다. 의식할 수 있는 몸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자연스러운 몸의 움직임이 되기까지의 과정의 행위. 이 순간들이 과연 몇가지 간단한 기술로 대체될 수 있는지, 또 그 과정을 통하여 대체됨으로 삭제된 순간의 흔적은 어떻게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작업이 있었다. 

이렇게 많은 레이어와 과정을 통하여 몸에 대한 질문은 끝없이 계속되고있다. 우리가 달고있는 몸은 어떠한 몸인지, 몸을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 것인지의 관한 질문은 작업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는 몸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혹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몸의 영역은 어디까지 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 이어질 작업에 대한 질문이자 출발점이 되고있다. 

<몸의 범위>

크롭된 신체들이 등장한 대략 2~3가지의 작업에서는 부분으로 전체를 말하고자 했던 부분이 작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고 인지하고 있는 손을 등장 시킴으로 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기계 듀엣” 에서 서술한 몸의 영역은 흔히 이분법적으로 많이 논해지는 몸과 정신의 경계에 있는 몸의 이야기를 하고있다.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루어 지는 몸의 영역과 무의식적으로 몸에 저장되는 몸의 기억들. 이것들은 트라우마적으로 남는 몸의 기억 혹은 체화되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몸의 움직임 (거부반응, 자동반사) 등이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몸의 범주를 본인이 직접 설정하고 그 논지를 풀어 나가는 데에 작업의 포커스가 맞춰지고 있다. 

 

 

몸에 관한 관심이 지속되는 과정 속에서 관심을 가졌던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연결은 소통의 의미, 서로 의지하고 힘을 얻는 의미, 에너지를 빼앗기는 등등의 의미로 설명할 수 있다. 이 주제 거리는 몸의 범주를 설정하는 데에 있어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사람은 수많은 장기와 뼈 세균들로 가득한 몸과 매일 살아가지만 그 존재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반면 내 옆에 다른 사람의 존재가 나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칠 때에 그 변화와 존재를 다시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물리적 신체적 접촉이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어떠한 행위 뿐만이 아닌 대화나 혹은 옆의 사람의 숨소리만으로도 몸을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회적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간접적으로 서로 접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최소 단위와 그 상황에서 오는 몸의 부재나 새로 만들어지는 몸의 범위와 필요성 등을 되짚어 보고있다. 

 

작업에 작업을 꼬리에 꼬리 물듯 연결하며 발전시켜가고 있는 과정에서 하나의 큰 주제를 두고 계속해서 변화하는 나의 관점과 성립 되어가는 개념들과 질문들이 흥미로운 체계를 지니고 있다. 작업의 출발점은 내가 만들어 두었던 그 전 작업이 되기도,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그저 흥미로운 어떤 사물이나 움직임이 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관심사가 나라는 필터를 통하여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있고 상관없어 보이던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작업의 형태로 나올 수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