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Skin , digital photography, 2750*3500mm, 2020
How much do we recognize our body?
Forgotten deep organs of the body suddenly came, and the gut seemed to be twisted.
To be recognized again by pain. You don't know the organs how it work and they still alive in me, but you need them.
But it appears as proof of its own existence through pain.
It's not about relationships with other people who don't feel the need for pain.
In contrast, it turns out that it is not necessary but necessary.
The body is seen as a form of clothing, such as armor or robes, with intertwined organs under the skin.
The organs exposed above the skin are particularly taboo in times when the body's vulnerable parts are exposed.
It's a kind of defense mechanism that says, "Don't approach me anymore."
To reveal one's defensive mechanism is in fact as revealing their weakness.
person who wears their organs is actually needs help and protection more than anyone.
<Second Skin> 은 나와 타자 간의 긴장관계를 개인과 신체로 끌고 들어온다.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의 몸을 인지하고 있는가? 잊혀진 몸의 깊숙한 기관들은 갑자기 찾아온 내장 이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인해 다시 인지된다. 작업에서 장기는 모르고 있지만 필요한, 그 러나 고통으로 자신의 존재 당위를 증명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이는 고통으로 인하여 필요성 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타인과의 관계와는 상반된 것인데,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지만 필요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입체는 피부 밑 내장기들이 얽혀 일종의 갑옷이나 도복 같은 의상의 형태로 보여진다. 피부 위로 드러난 장기는 특히나 신체의 취약한 부분이 노출 되는 것이 금기시되는 시대에, “나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마시오/ 할 수 없어” 라고 외치는 일 종의 방어기제로 작용하게 된다. 방어기제를 드러내는 것은 사실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기를 드러내어 입은 사람은 그 누구보다 타인의 도움과 보호가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다 분리가 가능한 오브제들이 모여 하나의 의상의 형태를 이루는 입체는 몸 안의 것을 다시 입는 의상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장기같은 오브 제들은 각 개체들이 모여 한 덩이를 이루게 된다. 페브릭은 병원에서 사용하는 린넨거즈와 주름이 져있는 아사, 염색된 광목들로 제작이 되었다.